고사성어

태산불양 (泰山不讓)

Fullsteam Paul 2024. 8. 28. 11:22

'泰山 不讓土壤하고, 河海 不擇細流니라.' 라는 문구에서 유래한다.

[독음]  태산 불양토양, 하해 불택세류.
[한자]  클 태/ 산 산/ 아니 불/ 사양할 양/ 흙 토 / 흙 양// 물 하/ 바다 해/ 아니 불/ 가릴 택/ 가늘 세/ 흐를 류
[출처]  『十八史略(십팔사략)』,『戰國策(전국책)』, 『古文眞寶(고문진보)』등에서 전해져 내려 온다.
[독해]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사양하지 않고, 강과 바다는 가는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다.

[성어의 의미]
태산은 흙덩이를 사양하지 않는다는 것은 최고의 태산이라 하더라도 작은 한 줌의 흙들이 모두 모여 이루어졌다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도량이 넓은 사람이라야 모두를 포용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강과 바다는 가늘 물줄기를 가리지 않는다는 뜻은 강과 바다가 큰 물줄기를 이루고 있는 것은 작은 시냇물들이 모이고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듯이, 역시 넓고 큰마음과 사고를 가진 사람은 모두를 포용하고 아우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유래] 7개의 나라로 분열되어 전쟁이 끊이지 않던 전국시대에 13세의 어린나이로 왕위에 오른 진왕(秦王) 정(政;진시황의 이름)이 천하통일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던 것은 이전 시기부터 공손앙(公孫鞅)과 같은 타국 출신 관리들의 ‘개혁’적 정책(물론 지배계급으로부터의 편향(偏向)된 개혁(改革)이긴 했지만)들에 기인하는데, 이는 그 당시 유행하던 무수한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하나였던  ‘법가사상(法家思想)’의 정치적 실현이었으며, 서쪽 변방의 진나라가 동쪽 6개국의 온건한 정책들과 달리 전 국토가 하나의 거대한 전쟁터였던 당시의 정세에 걸맞게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추동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자국, 타국의 구분없이 능력있는 유세객(遊說客)을 과감하게 기용하는 인재등용 방식에 힘입었던 것이다. 물론 인사(人事)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당시 민중들에게 너무도 혹독한 정책을 가했던 법가사상의 추종자들은 모두 자신이 만든 악독한 법제와 형벌에 제 다리가 걸려 처참하게 최후를 맞이하였는 바, 후에 상앙(商鞅)으로 불리며 권세를 누리던 공손앙이 그랬고, 경위야 어찌되었든 진시황을 왕위에 오르게끔 했던 여불위(呂不韋)도 그랬으며, 법가사상을 집대성했다고 하는 한(韓)나라 출신 공자(公子) 한비자(韓非子)와 진나라 승상(丞相) 이사(李斯)도 그와 비슷한 운명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하늘로부터 뜻을 받아 ‘천자(天子)’가 되려던 당시의 ‘제왕’들은 대다수 민중들에 대한 위와 같은 가혹한 압제(壓制)를 그 존립의 근거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전국시대 말기와 진시황의 통일시기에 이러한 ‘법가정치’의 정점(頂点)에 바로 이사(李斯)가 있다.
이사(李斯)는 전국시대 초(楚)나라 상채(上蔡) 출신으로 젊은 시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우연한 깨달음을 통해 법가의 창시자 격인 순자(荀子) 문하에서 수학(修學)한 후 부귀공명(富貴功名)과 출세를 위해 조국 초나라를 떠나 강대국 진나라에서 당시 승상의 자리에 있던 여불위의 식객(食客)이 되고 타국출신 관리로서의 최고 직책인 객경(客卿)을 거쳐 여불위 사후 승상의 자리에 올라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게 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동문수학했던 한비자를 모함하여 자결케 하고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주도했으며 통일 후 진나라 말에 환관 조고(趙高)와 함께 나라의 멸망을 초래하면서 그의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긴 했으나 지극히 출세지향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정치적 행보를 통해 오랜기간 민중 위에 군림했던 저열한 간신(奸臣)이기도 했다.
그런 이사가 여불위 사후 승상의 자리를 노리고 있을 무렵, 한(韓)나라 출신 정국(鄭國)이라는 사람이 진행하던 대규모 관개공사(灌漑工事)가 문제가 되었다. 그 공사는 진나라 국력을 낭비케 하려는 음모라는 것이었다. 진시황의 어머니 조태후의 애인이던 노애(노)의 반란이 진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그에 연루(連累)된 한(韓)나라 출신 여불위의 죽음이 있었던 당시, 진나라 출신 관리들은 이를 계기로 타국 출신 관리들을 추방하자고 주장하기에 이르렀고 정국(政局)을 안정시키기 위해 진시황은 ‘축객령(逐客令)’을 포고하였는데, 이는 초나라 출신 출세주의자 이사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상황이었다. 이에 이사는 다음과 같은 표문(表文)을 황제에게 올렸던 바, 이 <간축객서(諫逐客書)>는 <사기>의 ‘이사열전’에 수록되어 있고 그 중에 또 하나의 고사성어가 숨은 빛을 발하고 있다.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클 수 있었던 것이고, 큰 강과 바다는 아무리 작은 시냇물이라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깊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천하의 패자(覇者)는 어떠한 사람이라도 물리치지 않기 때문에 그 위엄(威嚴)을 온 세상에 떨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의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는 이 표문을 읽고 감명을 받은 진시황은 축객령을 접고 이사를 복권시킴으로써 폭넓은 인재등용 방식을 유지하였고 마침내 중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열전(史記列傳)의 이사열전(李斯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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