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종황제와 미국여성 비밀결혼 사건

Fullsteam Paul 2024. 9. 19. 09:04

 

1903년 10 24일 치 '콜로라도 스프링스 텔레그라프'지의 1면 헤드라인 기사는 다음과 같다. '필라델피아 출신 미국 아가씨 에밀리 브라운, 한국의 황후가 되다, 1700만 조선 백성을 신민으로 거느리다'. 그로부터 한달 뒤에 11 29일자 '보스턴 선데이 포스트'지는 이 특종 기사를 받아 '유일한 미국인 황후 어떻게 대관했는가'라는 제목으로 다시 신문 1면 머리기사를 올리고 결혼식 진행을 상세하게 보도한다.

 

당시 뉴스기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오하이오의 독실한 장로교회 목사 피터 브라운이 10년전 열다 섯살난 딸 에밀리를 데리고 한국에 선교차 갔다. 이 선교사가 고종을 알현할 때 에밀리를 데리고 궁궐에 들어갔다. 당시 명성황후가 뜻하지 않게 숨진 뒤에 고독한 나날을 보내왔던 황제께서 이 순박한 백인 소녀를 보고 친근감을 느껴 자주 궁에 불러들여 각별히 대접했다. 아버지 교회의 성가대 지휘를 맡은 에밀리양은 아버지의 목회 활동과 한-미간 외교에 좋은 영향을 주리라 믿고 접근했다. '신미년 강화도 광진포의 한-미전쟁 이후에 양이 양추 양괴로 이미지가 사나웠던 미국의 한 여인이 황후가 된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까지 했다.

 일찍이 포르투갈의 핸슬러 여왕이 신분 낮은 평민과 결혼, 귀 천상혼 선례를 남겼고 미국 평민 출신 커즌 부인이 인도 여왕이 된 적은 있지만 미국인 황후는 처음이라고도 했다. 이로써 미국 피를 받은 한국 황제가 태어날 수 있게 됐다 하고 '지난 8월에 있었던 약혼식에는 폐백을 실은 우마차가 인산인해를 이룬 하객 틈에 끊이질 않았다'고도 했다'보스턴 선데이 포스트'는 혼례 기사를 장황하게 쓰고 있는데, 익선관에 곤룡포를 입은 황제 곁에 무개차를 타고 있는 에밀리 브라운양에 대한 묘사를 보자. '한국식으로 큰 머리를 하지 않고 퍼머 머리에 영국 여왕이 쓰는 듯한 왕관을 썼으며 붉은 비단에 푸른 수를 놓은 땅을 끄는 치마는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하여 무 척 무거워보였다. 아마 현대 문명인으로 브라운양만큼 화려하게 꾸민 사람은 없을 줄 안다'. 52명으로 구성된 대취타 의장악대가 뒤따르고 오색 용기가 나부꼈다고 묘사했다. 이 브라운양이 바로 엄황후라는 것과 이를 처음으로 보도한 것이 빈에서 발행되는 '신자유신문'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기도 하다.

 

물론 당시 국내 신문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제국신문에는 이 미국인 황후에 관한 기사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미국인 황후에 대한 문의로 어리둥절 할 뿐이였다.

소문이 일파만파 커지자 주한 미국 공사관은 공식 성명을 발표한다.

 

'한국 황제는 외국 아가씨와 결혼한 사실이 없다. 더욱이 에밀리 브라운양과 놀라운 결혼을 뒷받침해줄 근거는 추호도 찾아 볼 수 없다. 또한 한국 황실로부터 간호사-시녀-여교사-가정교사- 여의사 같은 미국인 여자를 고용하겠다는 초빙 요구도 받은 적이 없다.'.

 

끝까지 이 고종황제와 미국인 20대 여성의 결혼 오보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밝혀지지 않은 채 사건은 일단락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