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이 정해지지 않으면 그 처신이 확립될 수 없고,
얼굴의 모습이 정해지지 않으면 그 표정이 엄숙할 수가 없고,
걸음걸이가 안정을 얻지 못하면 그 자세가 단정할 수가 없고,
말씨가 안정을 얻지 못하면 그 표현이 온화할 수가 없다.
志不定 不立 容不定 不肅 步趨不定 不端 出言辭不定 不溫
이남규(李南珪)『수당집(修堂集)』
선비는 죽일 수는 있어도 욕보일 수는 없다(士可殺不可辱兮)’
수당 이남규는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원팔(元八), 호는 산좌(汕佐)·수당(修堂)이다.
어린 시절부터 유학에 밝아 1875년 향시, 사마시 양과에 합격하고 1882년 정시 문과에 급제했다가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왔다. 이후 안동부관찰사에 부임해 의병을 진압하고 회유해야 하는 처지가 되자 의병 봉기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필연성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린 후 관찰사직을 사임하고 귀향했다.
1906년 인근 홍주에서 의병이 크게 일어나 이남규는 홍주 의병을 지원하는 등 의병활동에 적극 지원했으나 1907년 9월 아산에서 일제에 의해 아들 이충구와 함께 새끼손가락 하나를 못 찾을 정도로 처참하게 참변을 당해 순국했으며, 이후 정부는 이남규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